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거우차오 사건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쑹저위안은 톈진으로 돌아온 이후 사태가 이미 해결되었다고 판단하여 7월 12일 "이번 루거우차오에서 발생한 사건은 동아시아의 불행이지만 국부적인 충돌은 언제나 해결될 수 있다."는 성명을 발표하고 예하부대에 7월 14일부로 계엄령을 해제하고 열차를 정상운행하라는 지시를 하달했으며 이러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을 일본군에게 통고했다. 7월 14일, 장쯔중, [[치셰위안]], [[https://baike.baidu.com/item/陈觉生/5714427|천줴성]]이 쑹저위안의 대표로 지나주둔군 참모장 하시모토 군 소장과 회담했다. 기찰당국은 일본군이 제시한 즉각적인 철병, 항일분자 단속, 지싱원의 처벌에 동의하였다. 이어 친더춘이 중국 대표로 일본에 사과하였고 베이핑의 방어는 37사단에서 38사단으로 교체되었다. 하지만 국민당 정부는 더 이상 일본의 침략을 묵과할 생각이 없었고, 7월 17일 [[루산성명]]을 발표하며 신속하게 일본에 대한 항전 준비에 착수했다. 이를 본 일본군도 적반하장으로 이것이 일본을 업신여기는 증거라고 날뛰면서 일본군의 파병을 결정, [[화북전역]]이 개막함에 따라 양국은 [[중일전쟁|운명을 건 전면전]]으로 치닫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